연극.공연2026. 11. 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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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의 그것은 아니고 영화 '방자전' 처럼 다른 시점을 기반으로 새롭게 창작된 것으로
심청전은 소재로서만 활용될뿐 일관된 내용은 없다.

전체적으로 새롭지만 심청전을 알아야 새롭다고 느낄수 있을거 같은
만약 심청전을 모른다면? 인당수? 인신공양? 몸을 팔아? 인신매매? 뭐 그렇게 느낄수도 있다.
(한국사람은 심청전을 모르기 쉽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알기 쉽지 않은 내용)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점이 있는데 선주는 인당수에 인신공양 할 간난이에게 '마마'라는 호칭을 쓴다.
왜 일까? 죽임을 당하는 존재에게 예의를 표하는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처음엔 죽이니까 어여 죽으라는 선주의 암묵적인 가식인줄 알았다.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걸 봐서는
그런게 아닌거 같기도 하지만 알기는 어렵다. 선주의 자식 셋은 분명히 간난이를 현혹시켜 인당수에 빠뜨리기에만 급급하지만
선주만은 태도가 확연히 다른데 대화 중 선주가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대목이 있는데
무엇이 바뀐것일까?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때문에 심청 설화를 진정 믿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동안 수많은 제2, 제3의 청이를 인당수에 빠뜨렸기때문에 자신도 그것을 믿게 되었던 건가?

사람이 죽을때가 되면 종교적 믿음이 훨씬 강력해진다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죽음이란것은 돌이킬수가 없기때문에
인간의 두려움이 한층 고조되고 그 공포를 이길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신일수 있으니 신께 의존하고
사후 세계를 믿을수밖에 없는것이 나약한 그리고 불필요하게 높은 지능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때문 아니겠는가.
그래서 진심으로 박간난을 '마마'로 여겼을수도 있지만 그것도 꼭 그런건 아닌거 같기도 한것이
인신공양을 하지 않고 결혼을 시키려고까지 했으니.

심청이는 분명 죽기 직전까지 슬퍼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효만을 강조하기때문에
약간은 지나친 느낌이 든다. 물론 예전 고대 시대엔 인신공양을 미덕으로 삼던 시대도 있다.
잉카? 마야? 같은 종족은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고 인육을 먹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고 말하지만 최면에 가까운 무엇인가 있었던게 아닐까?란 생각도 지울수 없다.
그러나 심청이가 있던 시절은 또 그렇게 오래전의 내용도 아니라서 아무리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짜깁기 했더라도
좀 심하게 효만을 우겨넣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는 판소리지만 내용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뭐랄까? 심봉사가 독하게 부려먹기 위해 세뇌당한 청이 같다고 할까? 그러지 않고서야 중이 말한다고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겠다고 약조한다는게 흐름상 맞는 이야기인가? 당장 먹고 살것도 없는 주제에.(집만 있는 거렁뱅이나 다름없는 신세)

원전의 개똥같은 일관성을 깨면서 들어간다.
난 고작 보리 20섬에 팔여왔고 아버지는 난폭한 오입쟁이 노름꾼인데 이 사람이 팔았다.
그런데 이런 부모에게 효를 행하다 인당수에 빠지면 왕비가 될수 있다고 헛소리하는 선주에게
정면으로 대든다. 이게 당연한거 아닌가? 물론 너무 현실적이라서 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난 간난이가 여기서 도주 하는 내용인가?도 싶었지만 그렇게 진행되면 내용이 영~ 별로였겠지.
선주의 자식 셋중 장남은 고전을 그대로 주입시키는 타입-고리타분?-, 둘째와 세째는 그나마 현실성있게
간난이를 꼬신다. 어떻게 보면 직설적이면서도 허황된다.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간난이는 자신이 인당수에 빠질수 밖에 없는 운명이란것을 직감하는데.
삼형제가 제시하는것을 모두 보고 난 후 선주의 진실됨을 보며 간난이는 느꼈을까?
자신의 죽음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것을.

간난의 어떤 깨달음은 사후세계를 염두한것으로 보이지 않고 윤회로부터 해탈했다는 느낌적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선주는 그 동안 해왔던 자신의 과오의 산물인 자신으로부터 떠밀려 죽음을 당하므로서
굴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이것이 이 연극의 본질일수 있다. 과오에 대한 굴래와 현실에 대한 순응과 절망 그리고 뒤따르는 초연함

여백과 여운이 대단히 깊은 연극으로 자극적이지 않으며 소란스럽지 않지만 속 시끄럽게 만드는 아름답고 슬픈 연극이었다.

그런데 경리는 공감능력이 결여된(잘못되면 사이코패스 잘되면 냉철한 판단력의 인간) 선주의 또 다른 자아였을까.
간난이를 선택하지 않는 선택은 과거 자신의 과오를 반복하는, 인간의 굴래를 벗어난다는게 얼마나 어렵고
되돌릴수 없는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인가.

영화 '맨 프럼 어스'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심청가도 제법 슬픈데 이 연극은 다른형태로 제법 슬프고 멋진 연극이니 기회되면 꼭 보시길.

출연 : 송홍진, 강민지, 김지영, 엄태준, 백운철, 이현호, 서보찬, 박소현, 임태훈, 장정윤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0. 3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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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간쯤 되는 한복판에 좋은 공영 공연장이긴 한데
이곳의 공연들은 대부분 비싼 편이다. 사설공연장은 더 비싼것도 허다하지만
연극은 다른것들과 비교해 특히 비싼편.(같은 세금으로 운영하는 예술의 전당에서도 연극은 유독 더 비싼편)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지만 요즘은 티켓파워 높은 스크린 배우들이 나와대면서 가격을 올린다.
세금으로 건설하고 부족한 운영자금은 세금으로 채워넣으면서 서민은 섣불리 보기 힘든 가격을 책정한다.

뭐 그런거지. 간접세가 45%인 한국에서 결국 대다수인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개같은 공립 공연문화

어떤 희곡이었길래 1882년에 나온 후(원제: En Folkefiende) 근래에 다시 리메이크까지 되었을까?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어떤 쇠퇴한 마을을 되 살리기 위한 워터파크?를 만들었는데(원작은 온천)
물이 오염되었다. 이것을 알리지만 결국은 자본에 흔들리는 양심과 균형감이라곤 없는 민중의 태도

전반적인 인류의 모순된 형태를 고발하는 블랙코미디라고 해야 하는지.
사회운동가들이 직면한 개같은 민중의 현상을 말하는건지
쉽게 현혹되고 흔들리고 주관을 갖지 않는(못하는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 민중

가끔은 예전 일제 강점기 무렵 독립운동가들께서 눈앞의 일에만 현혹되어 있는 민중을 보며
독립이라는게 얼마나 힘들게 생각했을까?를 생각해보게 되고
근래 친위쿠데타 내란을 일으킨 윤석렬 일파들을 처벌하는것이 또한 얼마나 힘들고 어디까지 썪었는지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시기에 좌우로 휘청휘청거리는 정부나 민중을 보며 목숨걸고 군인들을 막아선 이들은 얼마나 한탄스러워 하고 있을지

커스틴(문소리)의 답답한 심정이 간접적으로나마 다가온다. 어쩌면 지금 한국을 보면 미치게 동화된거 같기도 하다.

이 희곡에서는 자본의 생리와 가십거리만 찾는 민중을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일부 권력도 나오지만 글쎄 그 권력이란것이 돈에서 비롯된것인지까지는 알긴 어렵다.

인기에 편승한 스트리머도 나오는데 뭐랄까? 왜? 이런 발랄하지 않은 이상한? 뭔가 음침한? 컨셉의 인물처럼 보이는걸까?
민중과의 직접적인 연결점을 만드는 사람 치곤 아웃사이더 같은 소수에게 인기 있는 듯한 느낌.
연출은 왜 이런 컨셉을 만든것인지 알기는 어렵다. 직업 특성상 엄청나게 활발하고 그나마 웃음을 좀 줄만한 유일한 요소였는데.

반면에 뭔 스크린(LED Wall) 은 또 그렇게 많이도 써댔는지.
밝기가 너무 밝아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기 쉽지 않다.
막판엔 커스틴의 연기따위는 안중에도 없는듯 사방에 스크린을 엄청 밝게 틀어대서
고함과 절규하는 커스틴은 보이질 않는다.
연출이 스크린에 환장장했나? 아니면 led wall 제조사에 협찬을 받았나?
민중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구성한거겠지만 연극인데 배우의 연기를 느낄 수 없도록
이렇게 스크린을 많이 깔아놓으면 어쩌자는건지. 가뜩이나 스크린 위주의 배우들은 액션이 보이질 않아서
망원경으로 보던가 맨 앞자리에서 봐야 할판인데.
(연출은 이런거 요청 안하나? 정극 배우와 스크린 배우는 표현하는 방법이 많이 달라서 스크린 배우는 형태를 많이 바꿔야 하는데)
뭐랄까? 이 사람이 스크린에 특화된 배우란걸 직관적으로 느낄수 있는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갑자기 감정이 폭발한다. 자신의 심심한 연기를 오버액션으로 커버치려는 경향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같다고 해야 하는지
그나마 이 연극에서는 카메라를 동원하면서 스크린에 배우 얼굴들이 클로즈업 되는데 이것때문에 역시 스크린에 어울리는 배우들일뿐
정극은 아직까진 아닌거 같다는 느낌만 더 강렬하게 들게 될뿐이다.
(원작도 스크린을 안쓰는건 아닌데 이렇게 부각시키진 않고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에 훨씬 가중을 두기때문에 스크리는 철저하게 효과정도로 생각된다.)

연극 보러와서 영화 보는줄 알았다.
연기로서 무엇인가 보여주기 어렵다면 하질 말던가 스크린같은 보조수단을 무차별적으로 이용해서 부족한 연출을 채우려 하지 말자.
그러면 가격이라도 영화비용 정도만을 받던가. 돈은 돈대로 처받고.
희곡이 갖는 본질은 대부분 사라지고 온갖 자극적인것들로 도배질을 해대서 내가 무엇을 봤는지
집에와서 외국사이트에 올라온 서평을 보고 알게 되면 얼마나 기분이 더럽겠는가.
스크린 밝기도 지금보다 1/10정도로 좀 줄이고. 극장에서 눈뽕은.. 에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분들인데 달달 볶아서 더 멋지게 뽑아내면 안되었을까.
2시간동안 지루하진 않지만 섭섭하다.

출연 : 문소리, 황영희, 강신구, 마두영, 이강욱, 박세은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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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0. 2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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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라는 영화가 있지 않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때.
종류나 형태가 다를뿐 죽기전에 되뇌면 분명히 어느 한때가 존재할거 같다.

연극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화양연화인데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곳에서의 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최고가 된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일수도? 아니면?
대부분이 그러하듯 화양연화를 꿈꾸면 대부분 지옥이 된다.
이게 문학장르의 징크스라 해야 하나? 클리세? 상투적? 이상하게 이상향의 반대상황이 이뤄지는 결말이 생겨나는데
연극을 보기 전까지는 젊은 청춘 남녀의 애뜻한 사랑이야기를 훗날 회상하는듯한 내용인가 싶었다.
관객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니 더욱더 그런건가보다 했다.
하지만 연극 소개 페이지엔 결코 이런 늬앙스의 이야기는 없다.
그냥 제목이 마이너스의 세계를 지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의 지문들만이 가득할뿐 (연극을 보기전에 못 봤음)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대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빈곤층은 빼놓을수가 없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돈이 많으면 과연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차별 받을까? 적어도 그 사람은 덜 받겠지
성소수자인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는 사회적 약자인가? 글쎄 이건 겉으로 표현 안하면 되는건데.
이성애자가 "난 이성애자요"라고 안하듯 동성애자도 "난 동성애자(양성애자)요"라고 안하면 그뿐인데.
아마도 가장 큰 사회적 소외자는 성전환자겠지.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어느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아쉽게도 이 연극에선 성전화자가 아닌 동성애자가 나온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도 있고 빈곤층, 치매노인도 있는데 치매는 왜? 장님, 하반신마비인 신체장애자
뭐 대충 이렇다. 대부분 빈곤함을 안고 있는거 같이 보이긴 하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빈곤한 상태라면 수많은 열등감에 빠질수 있다. 그리고 생겨나는 불신과 불만, 피해의식 들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러한 마음상태를 지니고 있어보인다.
초반엔 빈곤층인 민구 만이 열등감 가득한 것 처럼 보였지만 점차 하나 둘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들이 나오면서
인간의 어두운 면들이 하나 둘씩 나오게 되는데. 가끔 나는 생각해본다. 백지처럼 하얀 인간이 있을수 있을까?
갓난아기도 백지는 아닐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이기적 행동으로 비롯되어 진행되는 파멸의 시간들

약간은 추리 스릴러 같은 긴장감이 있는듯 진행되는데 누군가를 맞추는 추리물이라고 하기엔 좀 아쉬움이 있다.
영화 CUBE 같은 이상한 엔딩과 쏘우 같은 조금은 진부한 전개와 마무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사람? (이 두사람은 정말 모르겠음)

연극에서 보여주고자 한것은 이 엔딩은 아닐거란 생각이다.
인류가 에덴동산에 살아간들 분쟁이 없을리 없고
본능인 이기적 성향과 자기 보호 본능 같은것은 당연하기때문에 화양연화를 꿈꾸고 들어왔던 이들이나
어떤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어떤 이들이나 인간의 본성을 가볍게 판단하면 그 말로는 항상 어긋날뿐이다.
결국 인간의 잔혹한 운명같은 본능을 이 연극은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일부분에선 감정이 너무 올라가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110분의 짧지 않은 시간에
불편한 자리때문에 다리를 이리 저리 움직이지 않으면 온몸이 쑤시는 그런 소극장에서
지루함 없이 집중할 수 있었다는것은 매우 잘 짜여진 구성과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극장 동국은 다른건 몰라도 의자는 꼭 개선이 필요함. 연극 품질때문에 왠만하면 보러가는편이지만 관객석 생각하면 걱정이 앞섬)

사회적 약자라는 소재보단 인간의 내면을 겉으로 드러내므로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연극이랄까?
그냥 거울같다고 하는게 마음 편하려나?

출연 : 송유빈, 심재근, 김치성, 김시원, 김원진, 최찬미, 안현, 손민목, 지연애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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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