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6. 10. 3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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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간쯤 되는 한복판에 좋은 공영 공연장이긴 한데
이곳의 공연들은 대부분 비싼 편이다. 사설공연장은 더 비싼것도 허다하지만
연극은 다른것들과 비교해 특히 비싼편.(같은 세금으로 운영하는 예술의 전당에서도 연극은 유독 더 비싼편)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지만 요즘은 티켓파워 높은 스크린 배우들이 나와대면서 가격을 올린다.
세금으로 건설하고 부족한 운영자금은 세금으로 채워넣으면서 서민은 섣불리 보기 힘든 가격을 책정한다.

뭐 그런거지. 간접세가 45%인 한국에서 결국 대다수인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개같은 공립 공연문화

어떤 희곡이었길래 1882년에 나온 후(원제: En Folkefiende) 근래에 다시 리메이크까지 되었을까?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어떤 쇠퇴한 마을을 되 살리기 위한 워터파크?를 만들었는데(원작은 온천)
물이 오염되었다. 이것을 알리지만 결국은 자본에 흔들리는 양심과 균형감이라곤 없는 민중의 태도

전반적인 인류의 모순된 형태를 고발하는 블랙코미디라고 해야 하는지.
사회운동가들이 직면한 개같은 민중의 현상을 말하는건지
쉽게 현혹되고 흔들리고 주관을 갖지 않는(못하는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 민중

가끔은 예전 일제 강점기 무렵 독립운동가들께서 눈앞의 일에만 현혹되어 있는 민중을 보며
독립이라는게 얼마나 힘들게 생각했을까?를 생각해보게 되고
근래 친위쿠데타 내란을 일으킨 윤석렬 일파들을 처벌하는것이 또한 얼마나 힘들고 어디까지 썪었는지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시기에 좌우로 휘청휘청거리는 정부나 민중을 보며 목숨걸고 군인들을 막아선 이들은 얼마나 한탄스러워 하고 있을지

커스틴(문소리)의 답답한 심정이 간접적으로나마 다가온다. 어쩌면 지금 한국을 보면 미치게 동화된거 같기도 하다.

이 희곡에서는 자본의 생리와 가십거리만 찾는 민중을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일부 권력도 나오지만 글쎄 그 권력이란것이 돈에서 비롯된것인지까지는 알긴 어렵다.

인기에 편승한 스트리머도 나오는데 뭐랄까? 왜? 이런 발랄하지 않은 이상한? 뭔가 음침한? 컨셉의 인물처럼 보이는걸까?
민중과의 직접적인 연결점을 만드는 사람 치곤 아웃사이더 같은 소수에게 인기 있는 듯한 느낌.
연출은 왜 이런 컨셉을 만든것인지 알기는 어렵다. 직업 특성상 엄청나게 활발하고 그나마 웃음을 좀 줄만한 유일한 요소였는데.

반면에 뭔 스크린(LED Wall) 은 또 그렇게 많이도 써댔는지.
밝기가 너무 밝아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기 쉽지 않다.
막판엔 커스틴의 연기따위는 안중에도 없는듯 사방에 스크린을 엄청 밝게 틀어대서
고함과 절규하는 커스틴은 보이질 않는다.
연출이 스크린에 환장장했나? 아니면 led wall 제조사에 협찬을 받았나?
민중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구성한거겠지만 연극인데 배우의 연기를 느낄 수 없도록
이렇게 스크린을 많이 깔아놓으면 어쩌자는건지. 가뜩이나 스크린 위주의 배우들은 액션이 보이질 않아서
망원경으로 보던가 맨 앞자리에서 봐야 할판인데.
(연출은 이런거 요청 안하나? 정극 배우와 스크린 배우는 표현하는 방법이 많이 달라서 스크린 배우는 형태를 많이 바꿔야 하는데)
뭐랄까? 이 사람이 스크린에 특화된 배우란걸 직관적으로 느낄수 있는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갑자기 감정이 폭발한다. 자신의 심심한 연기를 오버액션으로 커버치려는 경향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같다고 해야 하는지
그나마 이 연극에서는 카메라를 동원하면서 스크린에 배우 얼굴들이 클로즈업 되는데 이것때문에 역시 스크린에 어울리는 배우들일뿐
정극은 아직까진 아닌거 같다는 느낌만 더 강렬하게 들게 될뿐이다.
(원작도 스크린을 안쓰는건 아닌데 이렇게 부각시키진 않고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에 훨씬 가중을 두기때문에 스크리는 철저하게 효과정도로 생각된다.)

연극 보러와서 영화 보는줄 알았다.
연기로서 무엇인가 보여주기 어렵다면 하질 말던가 스크린같은 보조수단을 무차별적으로 이용해서 부족한 연출을 채우려 하지 말자.
그러면 가격이라도 영화비용 정도만을 받던가. 돈은 돈대로 처받고.
희곡이 갖는 본질은 대부분 사라지고 온갖 자극적인것들로 도배질을 해대서 내가 무엇을 봤는지
집에와서 외국사이트에 올라온 서평을 보고 알게 되면 얼마나 기분이 더럽겠는가.
스크린 밝기도 지금보다 1/10정도로 좀 줄이고. 극장에서 눈뽕은.. 에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분들인데 달달 볶아서 더 멋지게 뽑아내면 안되었을까.
2시간동안 지루하진 않지만 섭섭하다.

출연 : 문소리, 황영희, 강신구, 마두영, 이강욱, 박세은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0. 2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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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라는 영화가 있지 않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때.
종류나 형태가 다를뿐 죽기전에 되뇌면 분명히 어느 한때가 존재할거 같다.

연극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화양연화인데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곳에서의 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최고가 된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일수도? 아니면?
대부분이 그러하듯 화양연화를 꿈꾸면 대부분 지옥이 된다.
이게 문학장르의 징크스라 해야 하나? 클리세? 상투적? 이상하게 이상향의 반대상황이 이뤄지는 결말이 생겨나는데
연극을 보기 전까지는 젊은 청춘 남녀의 애뜻한 사랑이야기를 훗날 회상하는듯한 내용인가 싶었다.
관객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니 더욱더 그런건가보다 했다.
하지만 연극 소개 페이지엔 결코 이런 늬앙스의 이야기는 없다.
그냥 제목이 마이너스의 세계를 지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의 지문들만이 가득할뿐 (연극을 보기전에 못 봤음)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대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빈곤층은 빼놓을수가 없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돈이 많으면 과연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차별 받을까? 적어도 그 사람은 덜 받겠지
성소수자인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는 사회적 약자인가? 글쎄 이건 겉으로 표현 안하면 되는건데.
이성애자가 "난 이성애자요"라고 안하듯 동성애자도 "난 동성애자(양성애자)요"라고 안하면 그뿐인데.
아마도 가장 큰 사회적 소외자는 성전환자겠지.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어느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아쉽게도 이 연극에선 성전화자가 아닌 동성애자가 나온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도 있고 빈곤층, 치매노인도 있는데 치매는 왜? 장님, 하반신마비인 신체장애자
뭐 대충 이렇다. 대부분 빈곤함을 안고 있는거 같이 보이긴 하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빈곤한 상태라면 수많은 열등감에 빠질수 있다. 그리고 생겨나는 불신과 불만, 피해의식 들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러한 마음상태를 지니고 있어보인다.
초반엔 빈곤층인 민구 만이 열등감 가득한 것 처럼 보였지만 점차 하나 둘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들이 나오면서
인간의 어두운 면들이 하나 둘씩 나오게 되는데. 가끔 나는 생각해본다. 백지처럼 하얀 인간이 있을수 있을까?
갓난아기도 백지는 아닐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이기적 행동으로 비롯되어 진행되는 파멸의 시간들

약간은 추리 스릴러 같은 긴장감이 있는듯 진행되는데 누군가를 맞추는 추리물이라고 하기엔 좀 아쉬움이 있다.
영화 CUBE 같은 이상한 엔딩과 쏘우 같은 조금은 진부한 전개와 마무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사람? (이 두사람은 정말 모르겠음)

연극에서 보여주고자 한것은 이 엔딩은 아닐거란 생각이다.
인류가 에덴동산에 살아간들 분쟁이 없을리 없고
본능인 이기적 성향과 자기 보호 본능 같은것은 당연하기때문에 화양연화를 꿈꾸고 들어왔던 이들이나
어떤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어떤 이들이나 인간의 본성을 가볍게 판단하면 그 말로는 항상 어긋날뿐이다.
결국 인간의 잔혹한 운명같은 본능을 이 연극은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일부분에선 감정이 너무 올라가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110분의 짧지 않은 시간에
불편한 자리때문에 다리를 이리 저리 움직이지 않으면 온몸이 쑤시는 그런 소극장에서
지루함 없이 집중할 수 있었다는것은 매우 잘 짜여진 구성과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극장 동국은 다른건 몰라도 의자는 꼭 개선이 필요함. 연극 품질때문에 왠만하면 보러가는편이지만 관객석 생각하면 걱정이 앞섬)

사회적 약자라는 소재보단 인간의 내면을 겉으로 드러내므로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연극이랄까?
그냥 거울같다고 하는게 마음 편하려나?

출연 : 송유빈, 심재근, 김치성, 김시원, 김원진, 최찬미, 안현, 손민목, 지연애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0. 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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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는 뭐랄까. 흥겹다? 판소리 다섯바탕 중 권선징악 끝판왕이라 해야 할까?
해학적이기도 하고. 당시엔 형제간 우애를 중시 했던것보다는 매우 수직적인 형태를 지닌다.
흥보가에서 놀보의 말에 흥보는 어떤 거부도 하지 않는다.
거의 왕적인 존재처럼 다가오는데 이 시대에 이런 문학이 나왔다는것은 형제들의 수직 관계가
깨지고 있었다는 소릴 수 있다.  조선 말기였으니까 동학운동도 그렇고 팍팍한 망국의 길로 가고 있었으니
기존 틀을 깨는 세력과 지키려는 세력간의 갈등이 심화됬겠지.

흥보가에선 흥보가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유머에서는
놀부가 훨씬 현명하고 흥보는 집안을 말아먹었을거라는 얘기도 빈번하다.
제비덕분에 일확천금이 생겼더라도 금세 가산을 탕진했을거라는 것이 현대 시각의 중론이다.

그만큼 어떤면에서 보면 꽤나 말도 안되는 판타지 물로 심청가 같은 류라고 해야 할까?
이처럼 동화같은 이야기라서 TV에서 만화영화나 아이들용 프로그램으로 많이 제작되고 그림책, 만화책으로도 많이 나온다.
착하게 살아야만 복을 받는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다.
(현명하게 사는 법을 알려줘야지 흥보가 처럼 멍청함-당시엔 이것이 선이라 생각했었나? 작가가 기득권층이었나?-은
주변사람들에게 당하다가 홀로 길거리에 앉게 될뿐이다.)
그래서 나는 흥보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것을 반대한다. 특히 저소득층 부모의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는건 더욱더 반대
하지만 고소득층 부모의 아이들에게 보여주는건 어떤면에선 찬성이다.

한국사람이면 80~90%이상이 알법한 그러한 내용의 흥보가
이광복 소리꾼은 아직은 젊은 사람으로 명창대열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분인거 같다.
오늘 소리를 들어보면 틀린곳도 없고 진행도 매끄럽고
워낙 오랜 시간 공부하지 않으면 이런 무대에 설수조차 없으니 이 무대에 오른다는것 자체가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무대매너부터 순발력 소리 등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초반엔 약간 목이 덜 풀렸는지 목이 너무 젊은거 아닌가? 싶었지만
발음이 좋아서 듣는데 편하고 감정 전달도 잘 되어 흥보와 흥보마누라의 절절함이 적적한 한 가을에 잘 어우러쟈
흥보가가 비극적 서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오늘따라 유달리 구성지게 들리는건 왜였을까.
판소리 다섯바탕 중 슬프지 않은건 솔직히 거의 없다. 좀 덜 슬픈게 수궁가(별주부전) 정도랄까?

초반 놀보의 만행이 좀 우낀대목인데 이부분에서 목이 덜 풀렸는지 그 맛이 좀 덜 살았던 기분이다.(단가라도 하나 부르고 시작하지)
이상하지? 예전엔 무척 우꼈던 기억인데 이젠 헉! 범죄인데? 란 감정이 덜컥 들다니
시대가 바뀌긴 하는거 같다. 아이때의 기억과 감정이 늙을때까지 이어지는게 아니었나?
난 이런 전통 공연을 보면 나의 어릴적 감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단지 지금 내가 느끼는게
그 시대와는 좀 안맞는거 같은데? 좀 어긋난 기분이다. 옛것 그대로를 전승하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관람객 입장에선 이 어색함을 이겨내는것은 예술가의 몫인지 소비자의 몫인지.

판소리가 연기도 함께 해야 해서 연기력도 무척 중요한데
아직은 다양한 배역들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각 인물별로 색을 입혀야 듣는 사람들이 그 속으로 빨려들텐데
특히나 흥보전은 선악을 명확히 구분해놓고 그 사이에서 고통받거나
자식들의 무관심함 같이 캐릭터들이 명확한반면 이광복 소리꾼은 이 구분을 무엇으로 두었는지 살짝 아쉽다.
소리로 구분하기 쉽지 않으면 행동의 표현을 극명하게 드러내면 어땠을까싶다.
보통 소리꾼이 소리가 약간 부족하면 액션으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서 명성을 떨치지 않는가.
이광복 소리꾼도 다 계획이 있겠지. 아직 그 시기가 안됬을뿐.

1장 80분 2장 70분으로 길다고 하기도 짧다고 하기도 어정쩡한 시간이긴 한데
이부분에서 대단히 이상한 선택을 했다.
놀부가 제비후리러 나가는것에서 끝낸다? 응?
놀부의 악행에 대한 벌을 받고 개과천선해서 놀부 홍보가 사이좋게 지내야만
이야기의 완성이 되는데 그냥 잘라버렸다?
춘향가에서 변사또가 남원으로 부임하고 끝내는것과 뭐가 다르더냐?
심청가에서 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진 후 끝내는 것과 뭐가 다르더냐?
적벽가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일으키고 도망가는 대목에서 끝내는 것과 뭐가 다르더냐?
수궁가에서 토끼를 용궁으로 대려간 후 끝내는것과 뭐가 다르더냐?

가중치가 떨어지는 부분을 잘라서 전체 내용이 깨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줄여도 줄여야지
이렇게 20%정도를 그것도 피날레 부분을 잘라버린다고? 너무 한거 아닌가?

이러면 완창판소리가 아니고 그냥 판소리 무대 아닌가?

흥보가는 흥보가 흥해서 좋은게 아니고 놀부의 악행을 천벌로서 다스려진다는것이 좋은것인데
다 못외웠다면 프롬프터라도 놓고 하지. 한창 무르익고 기대되는 부분에서 막을 내리다니 조금은 황당한 완창 무대였다.
실력은 부족한것도 아니고 왜 이런 선택을 한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신기한 공연이었다.

소리 : 이광복, 고수 : 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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